체크아웃은 10시, 퍼스로 떠나는 비행기에는 오후 6시경. 하루 종일 시간이 붕 떠버렸다. 여태까지 숙소에서는 짐 보관이 무료였는데 하필이면 여기는 유료였다.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락커를 빌렸다. 햇살이 무척이나 뜨거운 날씨였다. 어디를 가야 할지 방황하다가 퀸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비교적 값이 저렴한 브런치나 버거 종류는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여행 이후 처음으로 한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아니, 밥이 아니라 늘 사랑해 마지않았던 냉면을 먹었다. 그것도 육회가 올라가서 3불이나 더 비싼 냉면을! (여행 중 식사는 대부분 호주 마트나 한인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숙소에서 해 먹는 방식이었다.) 대단한 사치를 부렸지만 맛이 만족스러워서 괜찮았다.
어제 푹 쉬었는데도 다리가 아파서 잠시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다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시는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댕-댕-하며 종이 울렸다. 오른쪽 위를 쳐다보니 시청의 시계탑이었다. 그래, 여기도 와보려고 했었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 안에 뮤지엄이 있어서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했다.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들이 있었다. 전부 어려운 영어라 사진들을 보며 대강 유추만 할 수 있었다. 시계탑을 올라가려고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무려 한 시간 뒤란다. 전망은 숙소에서 많이 봤으니 큰 아쉬움 없이 돌아섰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브리즈번 공항은 케언즈보다 훨씬 컸지만 국내선이라 딱히 헤멜 일은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탑승 시간이 다 될 즈음 갑자기 탑승이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9시, 10시가 넘어서도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계속 죄송하다는 방송만 나왔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수하물을 내리고 찾으러 가란다. 입국장에 줄을 서서 설명을 듣는데 오늘 비행기가 출발할 수 없어서 내일 아침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심지어 나는 직항을 샀는데 멜버른 경유 티켓으로 바꿔준단다. 영어도 잘 못하니 따지려고 해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원. 귀국하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퍼스에는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던 것은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호텔 덕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밤 12시가 넘어 퍼스 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숙소까지 가기는 무리라 공항에서 노숙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예기치 못한 불생 속의 행운이라니. 초심자의 행운인가 싶기도 했다. 하하. 여행의 여신이 날 보며 웃고 있는 듯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는데 하루 숙박비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무려 15층에 관람차가 정면으로 야경이 보이는 개인 룸이라니(!).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만세!
내일 아침 이른 비행기라서 다시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은 겨우 4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비행기에서 자기로 하고 밤새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적게 남은 것도 이유지만, 맨날 백패커에서만 자다가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고작 4시간만 자고 나오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 더 컸다. 호텔 처음 가보는 사람처럼 촌스럽다고 생각해도 노숙에서 업그레이드된 푹신한 더블 침대는 그저 마냥 좋기만 했다. 졸음이 밀려오긴 했지만 이 아름다운 밤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 브리즈번 공항 셔틀 버스비 $15
- 브리즈번 -> 퍼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권 $299
- 점심으로 먹었던 냉면 가격은 $17.8
- 락커 비는 $6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