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밤을 지새우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체크아웃하는데 리셉션 직원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신다. 6시 55분 비행기의 버스는 10분 전에 출발했다고 한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순간 멍해졌다. 분명 어제 버스 4시 35분이라 그랬었는데 무슨 일이지? 대체 무엇 때문에 잘못 알아들은 걸까.. 너무나 친절해서 서글펐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여태까지 아끼고 아꼈던 돈이 순식간에 날아가는구나. 미처 해도 다 뜨지 않아 아직 야경을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도 지금 순간에는 다 미워 보였다.

무사히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드디어 퍼스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에 탑승했다. 멜버른에서 갈아탄 후 꾸벅꾸벅 졸다가 창밖의 핑크 호수로 추정되는 곳(일정상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던 곳인데.)을 지나 3시 반에 드디어 퍼스에 도착했다.
호주 서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퍼스보다 프리맨틀이 더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근데 오늘은 여행의 여신님이 날 비웃고 계신 모양이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어째서 국제선 청사인지. 순환 버스를 타고 국내선 청사로 가서 5불을 내고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내려서 역으로 갔는데 프리맨틀을 가지 않는다.(뭡니까 기사님..) 다시 15분을 걸어 퍼스 역에서 트레인을 탔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고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캐리어는 무겁고 잠은 쏟아지고. 여태까진 아직 그런 적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정말 다 집어던지고 집에 가고 싶었다.

프리맨틀 역에서 숙소까지는 12분 남짓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핸드폰의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몸을 이끌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숙소가 보이질 않는다. 네비는 자꾸만 날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호스텔을 찾고 있는 날 보니 자꾸 영화 "호스텔"이 생각나서 온몸의 감각이 쭈뼛쭈뼛했다. 체감상 30분은 걸어온 것 같고 내가 왜 하필 여기에 이 숙소를 잡았을까, 예약했던 내 손가락을 부숴버리고 싶을 즈음 눈앞에 숙소가 나타났다.

심지어 이 숙소는 감옥에 지어진(ㅋㅋㅋ) 곳이라 으슥했지만 입구를 비추는 불빛은 감옥이라기엔 너무나 예뻤다. 음산하면서도 무언가 매력적인 인테리어의 조합이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나 리셉션 직원은 여태까지 중 최고로 꼽을 정도로 친절하셨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한국어도 해주시고 노트북 와이파이 연결이 안 돼서 물어보니 여기저기에 전화하시면서 30분이 넘도록 끝끝내 해결도 해주셨다. 이것저것 물어보러 가기만 하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시는 그 모습이 참 고마웠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원이 기다리고 있어서 다행이다. 도미토리 방을 둘러보는데 으레 붙어있는 숙소 룰을 무심코 읽어봤는데 글쎄, "혹시라도 당신이 여기서 귀신을 보게 된다면 꼭 리셉션에 알려주세요."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토록 무시무시하게 귀엽고 깜찍한 안내문이라니.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드는 곳이다. 근데 오늘 밤 진짜 귀신 보는 건 아니겠지?
- 피같은 택시비 $55를 호로록 날려먹었다.
- 버스, 트레인은 각각 $5가량
- 프리맨틀 숙소 8인실 도미토리 1박당 $23 (epack인가 뭔가로 조금 더 저렴했던걸로 기억한다.)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