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사람들이 애정 하는 섬, 로트네스트 아일랜드.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섬의 최고의 이동수단은 바로 자전거이다(섬 내에 관광버스도 있다. 자전거가 힘들면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좋다.) 섬을 보존하기 위해 개인차들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페리를 타고 달려 도착하자마자 자전거에 올랐다. 지도를 봐도 감이 안 와서 그냥 일단 내달렸다.
길을 따라 가는데 이건 뭐지, 현실 바다인가. 이것이 인도양인가. 그동안 태평양만 보고 살다가 마주친 인도양은 아름답다는 말조차도 부족할 정도로 형언할 단어가 없었다. 그저 파랑, 파랑이었다. 바다도 하늘도 온갖 예쁜 파란색은 다 갖다 놓은듯한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해변을 바라보며 길을 따라 쭉 달렸다. 속이 다 뻥 뚫리는 듯한 느낌. 섬 입구에 식당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길가에 간간히 화장실과 버스정류장만 있을 뿐이었다. 개발되지 않은 태초의 섬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마냥 좋았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오르막길에서는 덥고 내리막길에서는 추웠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오직 나뿐이었다.(알고 보니 난 혼자 방향을 거꾸로 달렸었다.) 간혹 오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했다. 중간에 힘들면 어디든 쉬어갈 벤치와 해변이 있었다. 겨울이라 스노클링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 여름에 와야 했을 것을. 여기까지 와서 저 바닷속을 탐험할 수 없다니 개탄할 일이로다.
동쪽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달려 중간에 도착했다. 등대가 있었고 섬의 가운데, 서쪽 끝, 남동쪽으로 가는 3가지의 갈래길로 나누어졌다. 서쪽은 너무 멀어서 남동쪽을 선택했다. 북쪽 해변도 아름다웠지만 남쪽은 정말.. 리틀 살몬 베이를 본 순간 다 잊혔다. (대박, 헐, 미쳤다의 세 단어만 계속 반복했던듯하다.) 비루한 핸드폰으로는 이 실물을 담을 수가 없었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한참을 머물렀다. 이 작은 섬에 어찌나 해변이 그렇게도 많은지. 극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가 찜한 곳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전용 공간이 될 수 있었다.
한참을 놀다 시간을 보곤 아차 싶어 다시 달렸다. 체력이 다 해갈 즈음 건물들이 보였고 다행히 꽤나 일찍 도착했다. 유명하다는 돔 DOME에서 비싼 점심을 늦게나마 먹었다. 카페에서는 쿼카도 봤다. 생각보다 널린 게 쿼카는 아니던데, 다들 어디서 그렇게 발견하고 본거지?
밥 먹고도 시간이 남아 잠시만 달릴까 했는데 다리가 풀려버렸다. 포기하고 잔디에 냅다 누워버렸다. 바람은 싸늘했지만 햇볕은 따뜻했다. 신선놀음을 즐기다 깜빡 잠들었다. 서늘한 느낌에 눈을 뜨니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에 올랐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주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지체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곳,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라고.
- 로트네스트 섬 자전거 투어 $94
- 점심으로 먹은 라자냐는 무려 $20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