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여름휴가의 이틀째는 빗소리로 시작되었다.
어제는 날씨가 그렇게 좋았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바다의 색깔은 똑같은 회색빛이었다.
오늘의 계획은 양양의 핫플레이스인 스케줄양양과 서피비치를 가는 거였다.
날씨야 어쨌든 숙소 안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준비를 하고 펜션을 나섰다.
스케줄 양양은 우리가 있는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차로 약 10분가량의 가까운 거리였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긴 한다만 청량한 핫플을 찾아가는 데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날씨였다.
스케줄양양은 양리단길이라 불리는 양양의 핫한 동네에 있었다.
주변을 보니 독특하고 힙한 카페나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양양이 워낙 서핑의 성지 같은 도시이다 보니 어딜 가든 '서퍼'의 이름이 붙은 가게들도 많았다.
골목이 좁고 복잡해서 근처에 차를 대고 찾아간 스케줄양양은 비가 와도 한눈에 반할 만큼 잘 꾸며놓은 곳이었다.
처음 이곳을 가보자고 했을 당시 즈음 스케줄양양에서 노 마스크 풀파티를 해서 난리였다는 기사를 보곤
코로나 터진 거 아닌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우리가 갔을 때는 많이 한산했다.
휴가철도 아니었고, 주말도, 밤도 아니고 게다가 비까지 왔으니 사람이 북적거리면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입구에서 간단한 주문 설명을 듣고 한 바퀴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은 몹시 흐리긴 했지만 그 나름의 운치도 있었다.
그래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수영장 중간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서 인생 샷을 남기는 거였는데,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그 부분은 아쉬웠지만 스케줄양양의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워낙 휴양지 같은 느낌이라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만의 운치가 있었다.
맑은 날 왔었던 사람들은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일 테지. 후후
검은 우비를 입은 저승사자 같은 비주얼의 직원들이 수영장 안을 돌아다니며 벌레들을 건지고 계셨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했다.
어차피 들어가는 사람도 없고 비도 오는데 좀 쉬게 두지..라는 생각을 둘이 같이 했더랬다.
남자 친구가 사전에 이곳 메뉴 중에서 망고 중에서도 비싼 애플망고로 만든 망고빙수를 먹어봐야겠다 해서 하나 주문을 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쉬운 대로 앉아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어느 정도 보정하면 나름 훌륭한 사진이었지만 먹구름 가득한 하늘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옆의 유리문 안쪽 실내 테이블들은 문이 닫혀있었다.
밤에만 운영하는 건지 사람이 없어서 닫아놓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으슬으슬한 기운을 감지하며 망고빙수가 나왔는데 얼음이 우유얼음이었다.
망고도 달고 맛있고 연유를 따로 줘서 뿌렸는데 당연히 더 맛있었다.
연유의 양이 빙수에 비해 너무 적어 추가할 수 있나 하고 물어봤는데 많이 주셨다.
가격이 비싼 만큼 양이 적진 않았는데 아마도 약 4인분 정도의 분량이 아닌가 싶었다.
둘이 다 먹기엔 무리였고 무엇보다도 날이 너무 추웠다. 흑.
우리는 낮에만 잠시 가서 즐겼었는데 다른 사진들을 보니 역시 스케줄양양의 진면목은 저녁부터 아닐까 싶긴 하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면서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는데 낮에는 가족, 연인들이 와서 즐기기에 좋겠고
밤에는 힙하디 힙한 온갖 젊은이들이 모여 놀 수밖에 없는 공간 같았다.
낮 시간이 생각보다 널널해지는 바람에 스케줄양양에서 곧바로 서피비치를 구경하러 떠났다.
서피비치. 이번 여름휴가를 양양으로 오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이었었는데.
서피비치를 향해 가면 갈수록 비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우리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휴가철을 피해 늦게 왔건만 날씨가 도통 도와주질 않는구나.
서피비치의 위치는 뭐랄까 상당히 휑한 곳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해변 자체가 프라이빗 해변이라 그런가 싶었다.
주변에 길가에 차를 대고 내렸는데 비가 더욱더 세차게 쏟아졌다.
망했다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정말 생각보다 꽤나 많이. 이래서 서피비치~ 서피비치~ 하는구나.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들 가볍게 한잔씩 하고 있었는데
아마 성수기 땐 여기도 온갖 젊은 남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겠지.
아무리 둘러봐도 날씨가 너무 별로라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서 군데군데 사진 좀 찍다가 금세 돌아섰다.
술 한잔 할 거면 숙소까지 걸어갈 거리는 아니고 택시를 많이들 이용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조금 더 한적한 느낌의 휴양지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지만
스케줄양양도 그렇고 서피비치도 그렇게 약간 더 힙한 헌팅 장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동남아 느낌처럼 꾸며놓은 야외 클럽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커플이 와서 오손도손 즐길만한 분위기로써는 약간 아니올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허무하게 서피비치를 뒤로하고 숙소로 들어가 스파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