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와서 태어나서 제일 많이 공연을 보러 다닌 것 같다. 서울에 살면서는 더 많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오히려 그때는 여유가 더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더랬다. 온전히 여유를 즐기러 온 (물론 여유를 가장한 도피가 팩트였긴 하다.) 제주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짬짬이 공연을 보러 다녔다. 마침 내가 있던 7,8월경에는 제주도 여기저기서 다채로운 공연들이 많이 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여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때였다!
'제주 도립 미술관에서 공연한대. 보러 가자!' '미술관에서 공연? 신기하네, 콜!'을 외치며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6주년 기념공연이라는데, 처음 본 제주도립미술관은 (아니, 애초에 살면서 미술관에 온 건 사실 이곳이 처음이었다.)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술관 주변으로 둘러진 작은 연못은 마치 미술관이 물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느낌은 다르지만 경주의 안압지의 현대판 같은 느낌이랄까. 제주도청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고즈넉한 감상을 즐기러 가기엔 여러모로 적절한 장소로 보였다.
잠깐의 구경을 마친 뒤 안쪽의 공연장으로 이동했는데, 때마침 하늘에는 무척이나 독특한 모양의 구름이 생성되어 있었다. 마침 바람도 꽤나 세차게 불어서 내 마음대로 태풍 구름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곧이어 펼쳐진 공연. 직접 본 울랄라세션의 공연은 정말이지 신났다. 처음에는 흔들흔들 리듬을 탔지만 우리 일행들이 겨우 둠칫 둠칫 정도로 가만있을 사람들이 아니지. 마지막에는 다들 함께 뛰어 놀기도 하고. 감성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 어찌 신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뇌리에 깊이 남았던 또 하나의 공연. 사우스카니발. 제주도에서는 제법 유명한 인디밴드라고 들었는데, 한 여름밤의 예술축제라는 이름으로 제주문화원 해변 공연장에서 날짜별로 공연들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들의 공연이 열린다고 하여 보러 갔었다.
'몬딱 도르라'
모두 함께 돌아라 라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 방언은 진짜 어려운데 이처럼 묘하게 귀엽고 정감이 가는 단어들이 왕왕 있다. 말 그대로 공연을 보며 방방 뛰며 돌았다. 노래를 하나도 몰랐는데도 재밌었던걸 보면 내가 공연에 취했던지, 이들이 날 취하게 만든 멋진 가수들이었던지,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싶다. 공연이 이렇게 재밌는 건 줄 알았으면 체력이 좋은 어린 시절에 한 번이라도 더 공연을 즐겨볼걸.
실컷 뛰어놀고 이때 제주에서 한창 즐겨마시던 제주 막걸리를 각자 한 병씩 챙겨 들고 탑동 방파제 앞에 앉아 홀짝이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한 잔의 음악과 술, 그리고 좋은 사람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더 필요할까.
본 제주도 여행기는 약 6년 전쯤 어느 한여름날의 제주도 생활기를 다룬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