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있는 묘한 기분이 좋다. 분명 무척이나 피곤했는데도 왜 잘 못 자고 뒤척거리는지 모르겠다. 여행의 설렘 때문이지, 태생이 야행성인 몸뚱이 때문인지. 숙박비와 시간 절약을 위해 귀신 나올 것 같은 도로를 달리고 달려 케언즈에 도착했다. 투어비를 가장 많이 투자했었던 레포츠의 천국! 케언즈가 몹시나 기대된다.
무척 이른 시간, 도시는 이제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빅 스마일과 굿모닝이라는 한마디는 케언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오늘은 투어가 없는 날로, 간밤에 뭘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쿠란다 마을 구경을 가기로 결정했다. 굳이 여행사를 이용할 필요 없이 시닉 레일웨이라는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
기차에 오르니 뿌우-뿌우-하는 경적소리는 나를 어떤 옛 영화의 한 장면으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았다. 풍경 구경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오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멋지게 쏟아지던 저 폭포가 배런 폭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배런 폭포가 의외로 더 별로였다는 사실. 계속되는 울창한 열대림을 지나 쿠란다 마을에 도착했다.
쿠란다 마을은 열대우림 속 원주민들의 마을이다. 쭉 둘러보니 기념품 샾이 반, 레스토랑이 반이었다. 기념품 샵은 죄다 똑같은 물건들뿐이었고, 체험거리들은 그다지 매력 있는 콘텐츠는 아니었다.
오래 구경할 것도 없이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세상에 크레페가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처음 알았다. 단연 오늘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쿠란다는 다시 가 볼 생각은 안 드는데, 지금도 여전히 장사하고 있으려나 궁금하네. 심취해서 열심히 먹는데 여유롭게 식사하고 나가시는 듯했는데 직원이 달려와서 계산 안 하셨다고 하시니까 화들짝 놀라시면서 아이고 맞다, 그랬지 허허허 하시며 너털웃음 지으시던 노년부부가 작은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길거리에 걸린 옷가지들을 자기 몸에 대보면서 너무 짧은가? 아냐, 괜찮은데, 하며 꽁냥꽁냥 대화를 나누시던 중년 부부,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모자 사이, 엄마를 너무 안 닮아서 아빠는 어디 가셨나라며 혼자 하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지독할 만큼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내가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관찰자가 되곤 한다. 아마도 심적으로 여유로워서겠지, 그리고 일상에선 귀찮기만 한 그 일이 여행지에서는 신기하게도 참 재미있다.
내려갈 때는 스카이 레일을 탔다. 남산 케이블카도 한번 안 타봤는데. 긴장 반, 설렘 반. 꽤나 무서웠다. 높이도 높고 의자 밑 바람구멍에서 살벌한 바람소리가 분다. 노부부와 셋이 함께 타게 되었는데,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나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 갈아타는 곳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오래된 친구처럼 손을 엄청 흔들어주셨다. 쿠란다는 별로였지만 웃음 짓게 만들어준 인연들 덕분에 즐거운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녁 먹기 전에 잠시 라군을 다녀왔는데 역시나! 여행 전 사진으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감동 또 감동. 아침에 동트기 전에도 잠깐 보긴 했었지만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아름답구나. 내가 생활하고 있는 동네 한가운데에 이런 라군이 관리, 운영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쿠란다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이 풍경 앞에선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교통 - 에얼리 비치에서 케언즈 그레이하운드 버스 $102
- 쿠란다 기차/스카이레일 $112
- 숙박 - 케언즈 도미토리 10인실 1박 $25
- 쿠란다 관광열차 헤리티지 등급 예약하기 -> https://me2.kr/p4lu2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