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서귀포 쪽으로 내려온 김에, 몇 군데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잠시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제주도 오기 전에 여기는 꼭 가봐야지! 했던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쇠소깍에서의 투명카약이었는데,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줄 서도 모자랄 판이라는 말에 그만 좌절했다. 아침잠이 많은 데다 이미 늦어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가기로 결정하고 외돌개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돌개, 장군석, 혹은 할망바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던 곳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할망바위라 불리게 된 스토리가 가장 와닿았다. 다른 스토리보다도 절절한 사랑이야기였기 때문일까? 홀로 남아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를 그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어쩌면 감히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마음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할망바위 스토리
외돌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 서귀포에는 바닷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이좋은 한 노부부가 살았다. 거친 바다를 마다하지 않고 노부부는 나가서 일을 했다. 하루는 바다도 잔잔한 것이 배를 띄우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하르방, 바당에 강 하영 잡앙 옵서예.” “경 허주. 오늘은 날도 좋으난 고기 하영 잡히커라.”
이렇게 할아버지는 채비를 마치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에 나가니 아닌 게 아니라 고기가 떼로 다니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흥겹게 고기를 끌어올렸다. 돌아가서 할머니에게 많은 고기를 자랑할 생각에 신이 나서 일을 하다 오랜만에 만난 만선이 너무 기뻐 돌아오는 시간을 살짝 넘기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서둘러 배를 돌려 섬으로 돌아오려는데 그만 풍랑을 만나고 말았다. 만선으로 돌아올 할아버지가 늦어지자 발을 동동 구르며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의 기다림도 뒤로 한 채 할아버지도, 배도, 그 많은 고기도 바다 깊이 끝도 없이 빠져 들고 말았다.
다시 날이 밝아도, 또 많은 날이 밝았다 다시 어두워져도 영영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애타게 부르다 돌이 되고 말았다. 그 할머니가 돌로 굳어 외돌개가 되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외돌개를 살짝 옆으로 보면 먼바다를 보며 애타게 할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르바앙~, 하르바아~ㅇ.”
아직도 어느 곳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도는 그 이름을 산산이 부서뜨리고 있을 것이다.
(출처 : visitjeju.net)
외돌개 옆에 있는 황우지 해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해변이라길래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해변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웬걸. 전혀 다른 느낌의 핫 플레이스였다. 마치 계곡의 작은 연못 같은 느낌이었던 이곳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해수욕 계획이 없었기에 아무런 옷도 장비도 챙겨 오지 않은 나를 고스란히 원망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황우지에서 발장구만 첨벙첨벙 치며 아쉬운 마음 달래다가 향한 곳은 돈내코 계곡이었다. 천제연 폭포는 산책하며 자연경관을 즐기기에 그만이었던 곳이라면, 이곳은 그야말로 신나게 놀 수 있는 계곡이었다. 폭포가 화려하진 않았고 앉아있기조차 협소한 바위 덩어리의 공간들이었지만, 그 밑에 형성되어 있는 연못 같은 공간은 수영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고 동시에 나는 또 한 번 아무런 장비를 챙겨 오지 않은 나를 두 번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황우지보다는 돈내코가 훨씬 더 좋았다. 접근성은 황우지가 좋지만 사람이 적은 쪽은 돈내코가 압승이었다.
그저 멍하니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부러운 눈길과 동시에 아쉬운 감정만이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좋은 곳에서 발 밖에 담글 수 없는 바보 같은 현실을 원망함과 동시에 왜 옷을 입고 뛰어들 용기는 나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물론 두려움이 더 컸겠지만. 옷이 젖어도 말리면 그만인 것을, 물에 들어가서 젖은 옷은 몇 시간이면 말랐겠지만 물에 들어가지 못한 후회는 계속해서 내 마음 한구석에 남겠지. 생각해보니 어쩐지 매번 후회하는 느낌이다.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후회가 남는 때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저 살아가면서 앞으로 일어날 시행착오를 줄여갈 뿐이겠지.
본 제주도 여행기는 약 6년 전쯤 어느 한여름날의 제주도 생활기를 다룬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