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 12사도에서 8사도로

반응형

달콤하디 달콤한 침대 밖을 나서는 일은 언제나 늘 평생 힘들다. 오늘은 투어를 위해 일찍 일어났지만 피곤함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여기까지 와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가지 않을 대범함 따위는 없었다. 무료 트램이 운행하기 전의 아침 시간이라 20분가량을 걸어 집합장소인 시청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이곳저곳의 가격들을 비교해보고 가장 저렴한 곳으로 예약했더니 한인 여행사였다. 윽. 이번엔 제발 구매를 유도하는 이상한 곳은 안 갔으면. 어느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과반수가 가족으로 보이는 그룹들이었다. 아웃백과 사막을 거치면서 영어의 홍수 속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오랜만에 아주 잘 아는 언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이드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탑승했고 바깥은 흐렸다. 비가 계속 오고 있지만 어제도 오다 말다 했으니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1시간 조금 넘게 달려 메모리얼 아치라는 곳에 도달했지만 비는 더욱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나가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고 쓰여 있는 나무로 만든 입구를 찍고 후딱 버스로 돌아왔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도 길지 않긴 했지만. 

금방 다시 달려 점심을 먹을 마을을 잠시 지나 야생 코알라를 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워낙 궂은 날씨라 과연 코알라가 있을지 없을지 가이드 아저씨도 확답해주진 못했지만 우리는 코알라를 봤다. 야생인지 누가 키우는 새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친화적인 앵무새들이랑 놀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앞쪽에 나무 꼭대기 위에 유칼립투스 잎을 맛있게 먹고 있는 코알라를 발견했다. 무려 새끼도 같이 있었다. 워낙 게으르고 잠 많고 번식 욕구도 없어서 보호종으로 지정되었기에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나 싶었는데. 나는 이로써 굳이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러 돈까지 지불해가며 동물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겼다. 야무지게 식사를 하는 코알라를 뒤로 하고 아까 지나쳐온 마을로 되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를 진행하는 모든 업체가 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듯하다. 푸드 코트도 거리도 공중화장실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지금부터 한 시간 반을 달리면 투어의 목표인 12 사도를 보러 가는 길이다. 버스 안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그 와중에도 잠은 쏟아졌다. 한참을 자다가 가이드 아저씨의 마이크 소리에 눈을 뜨니 저 멀리 12 사도의 첫 번째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비도 잠시 소강상태였다. 다행히도 12 사도는 잘 보라며 하늘이 응원해 주나 보다. 안내센터를 통과해 마련된 산책로를 따라가니 12 사도의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12 사도의 절벽은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깎아내려지고 있는 이 바위들은 이미 4개를 소실한 상태였고, 남은 8개도 몇 개는 이미 많이 깎여서 작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흉포한 파도는 계속해서 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할 긴 시간을 거쳐 12 사도가 만들어지고 또 수천 년에 걸쳐 파도가 부수고 바람이 부수고 나중에는 모두 사라지겠지. 내 후대는 아마 사진으로만 지구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겠지? 모두 사라지기 전에 볼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다. 파도와 바람이 계속 제 살을 깎아먹고 있는 바위의 기분은 어떨까. 언젠가는 사라져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바위는 알고 있을까.


  • 그레이트 오션로드 투어 비용 $75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