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호주

[멜버른 여행] 단데농 퍼핑빌리 증기기관차, 토마스와 함께 칙칙폭폭

반응형

해가 뜰락 말락 할 꼭두새벽에 버스는 나를 멜버른에 내려다 주었다. 워낙 잠을 설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새벽 6시에 체크인은 불가능했으며 나는 아침 10시 반에 예약해놓은 퍼핑빌리를 타러 가기도 해야 했다. 늘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머피의 법칙은 더 자주 발생하는 느낌이다. 여유로울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말이다. 멜버른 YHA는 치사하게도 락커가 공짜가 아니었기에 비싼 돈을 주고 짐을 맡겨놔야만 했다.

나는 토마스를 만나기 위해 단데농으로 가는 트레인 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꼭 이런 날 머피는 나를 따라다니지. 하필 일요일이었고 하필 주말에 흔히 걸리는 트랙 워크인지 뭐 때문에(시드니에서 살 때 주말에 늘 겪었던 건데 잊고 있었다. 아마도 주말을 이용한 노선 점검 인 듯한데, 이 트랙 워크 구간은 무료로 버스를 제공해준다.) 트레인을 한 번만 타서 한 시간 동안 쭉 가며 될 곳을 30분을 더 추가해서 트레인 한번, 버스 갈아타고, 다시 트레인을 타고 가야만 했다. 일요일인 줄 알았으면 그냥 내일 날짜로 예매했으면 편했을걸. 사서 생고생을 하게 돼 버렸다.

잠은 오고, 날은 춥고, 내가 여행을 하러 온 건지 관광을 하러 온 건지 고생을 하러 온 건지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쯤 벨그레이브 역에 도착했고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를 타러 갔다. 토마스의 모델이 된 이 기차는 아직도 증기를 뿜 뿜 내뿜으면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어찌나 귀여운 기차던지. 이미 일찍 자리를 잡아 놓은 사람들 때문에 갈 동안은 좋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 게다가 난 너무나 심각하게 졸리고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추웠다. 솔직히 말하면 숙소에 가서 자고 싶었다.  

내가 예매한 레이크사이드 역에 도착해서 정신 좀 차리고 간단히 배를 채우니 좀 살 것 같았다. 10시 반에 출발해 11시 반에 도착했고 12시 반에 되돌아가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다. 일정이 빡빡해 보였지만 레이크사이드에는 아주 작고 그다지 깨끗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호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다음 기차까지는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딱히 볼 것 없는 이곳에서 기다릴 만큼 나는 인내심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빨리 가서 좋은 자리를 맡아 창가에 앉았다. 그냥 봤을 때는 창가의 틈이 꽤나 넓어 보였는데 의외로 몸이 쏙 들어가서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가끔 기차가 속력을 내거나, 가장 하이라이트 구간인 다리 밑을 지날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도 들었다. 케언즈의 쿠란다 마을을 갈 때도 이런 비슷한 기차를 탔었지만 굳이 둘이 비교하자면 퍼핑빌리가 단연 압승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기차가 지나가는 구간에는 마을도 있고 도로도 있고 산책로도 있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준다는 점이다. 특이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이런 문화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서서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는 나도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의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4시간만 예약해둔(옵션이 그것뿐이었다) 락커의 비용이 어마 무시하게 불어날까 봐 신속하게 숙소로 이동했다. 퍼핑빌리만 갔다 왔는데도 벌써 오후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컨디션 난조인 내 몸뚱이처럼 하늘은 어찌나 어둡던지. 태양이 구름에 가려 힘을 못 쓰고 있으니 바람은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졌다. 전형적인 초겨울 날씨였다.

한인마트를 찾아가려고 플린더스 역에서 내려 걷는데 확실히 듣던 대로 건물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러나 내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아름다운 건물들 아래, 옆 사방에 널브러진 온갖 쓰레기들과 담배꽁초, 노숙자들을 보고 있자니 정녕 아름다운 도시가 맞는가 의문이 들었다. 난 멜버른이 이렇게 더러울 줄은 몰랐다. 어째서 가만 놔둬도 아름다운 도시를 시민들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잠시 왔다가는 관광객들의 만행이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고 단편적인 한 거리만 본 것이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일을 목표로 한 카페거리는 어떨지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 애들레이드 -> 멜버른 파이어플라이 버스 $60
  • 단데농 퍼핑빌리 $54
  • 멜버른 YHA 백팩커 1박에 $23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