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시간. 브룸에서 다윈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시간. 버스에서의 27시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어제저녁 6시에 탑승해서 곧 잠이 들고 깨어난 아침에도 아직 15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역시나 아침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기사 아저씨는 날 깨운 후에 꼭 밥 먹고 9시까지 오라며 지갑은 챙겼냐면서 어찌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던지. 부스스한 얼굴로 밖에 나오니 무척 더웠다. 다시 지독하게 뜨거웠던 호주의 여름인 것만 같았다. 지금 분명 겨울인데 도대체 여기 사람들은 여름에 어떻게 살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다윈으로 가는 거니?"
근처를 어슬렁대는데 아마도 브룸에서 같이 탔던 애버리진 여자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다윈은 좋은 곳이야. 높은 건물도 있고 번화가도 있고 쇼핑몰도 있고 상점, 레스토랑 다 있어. 큰 도시야."
하면서 다윈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다윈에 사는 애버리진인가 하고 생각했다. 언젠가 가이드북에서 본 것 같다. 소수의 애버리진들은 술 먹고 마약도 하고 행패 부리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대다수의 그들은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본디 호주가 자신들의 땅이었지만 백색의 인종들에게 빼앗겨버린 참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하고 다니는 행색을 보면 그다지 불쌍하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지키려는 노력도 않고 그저 되는대로 사는 것 같아 보여서.
브룸부터는 황토색의 황무지가 아닌 붉고 붉은 흙들과 나무들이 가득한 하지만 결코 푸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초원이 계속되었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뛰어놀고 있어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은 호주이니 이왕이면 뛰어다니는 야생의 캥거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로드하우스에 잠깐 정차했지만 도대체가 소화가 되질 않았다. 내내 앉아만 있으니 음식이 들어갈 리도 없었겠지. 게다가 혹시 몰라 팀탐이고 과일이고 미리 잔뜩 사놔서 늘 배가 불러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며 앞으로 남은 도시에 대한 정보들도 훑어보고 가져온 작은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이기도 했다. 어제오늘만 해도 벌써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미리 핸드폰에 e-book으로 사둔 책들을 다 읽어간다. 사둔 책의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 버스는 다윈에 도착해가고 있었다. 다시금 느끼지만 지독하게 넓다, 호주 땅은. 온몸이 아파지고 어깨와 목이 쑤셔올 때쯤 마침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불길한 냄새. 분명 다윈은 큰 도시고 번화가였다. 내 생각보다도 훨씬 도시적이어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곳곳에 성황 중인 펍들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지만 도시 전반에 느껴지는 이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은 도대체 뭐지. 찜찜한 느낌이 너무 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진(이런 표현을 하면 좀 뭐하지만) 애버리진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뚫어져라 쳐다본다.
호주 자체가 다민족 국가인 데다 여기 아시아인들이 그렇게 없지도 않을 텐데, 생각하는 찰나 옆에 지나가던 애버리진 한 명이 갑자기 "헤이, 도와줄 테니 5달러?" 이런다. 난 그다지 낑낑대며 걷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사람들의 눈빛, 관광객처럼 보이는 내가 돈으로 보였던 건가 보다. "됐어요, 전 괜찮아요." 퉁명스럽게 내뱉곤 더욱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진 불길한 느낌은 이런 거였을까. 지금까지 중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밤의 냄새를 가진 곳이었다.
- 브룸 -> 다윈 그레이하운드 버스 $268
- 보통 로드하우스에 식사할 경우 $10~20 정도 든다. 비싸다 ㅠㅠ
- 다윈 YHA 숙소 다인실 1박에 $23
<본 호주 여행기는 2016년의 정보들임을 알려드립니다.>